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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님의 일평생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의 성장사이기도 합니다.

이제 고인이 되신 김대중 대통령님의 삶을 떠올리자니 일평생동안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수차례에 걸친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그 분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과 함께 언제 어디에서든 가장 먼저 국민을 생각하고 항상 약자 곁에 서고자 하셨던 그 마음이 떠올라 애석하고 안타까운 추모의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특히 임기 중 IMF 위기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비정규직이 늘어난 것이 가장 가슴 아픈 일이었다던 그의 고백은 그가 발전시키고자 했던 시장경제 역시도 사회적 약자들까지 고려해야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현대사에서 남북화해와 한반도의 평화 또한 '김대중'을 빼고는 이야기 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정도로 통일과 평화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에겐 김대중을 떠올리면 주저 없이 인권이라는 두 글자가 떠오릅니다.

민주주의도, 시장경제도, 남북평화도, 경제발전도 모두 결국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권리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김대중 선생의 인연은 이렇습니다.
수많은 국민들의 피와 땀을 바탕으로 우리는 87년 6월 항쟁을 통해 마침내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해 내었습니다. 그러나 그해 12월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선생은 낙선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이때 저는 낙선한 김대중 선생을 도와야겠다는 일념으로 재야에서 함께한 문동환, 박영숙, 임채정, 이해찬 등 선․후배 동지들과 함께 평민당에 평화민주통일연구회 일원으로서 입당을 하게 되었
                  <사진=노컷뉴스>
습니다.


제가 평민당에서 처음 맡은 역할은 인권관련 부서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도 마찬가지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만, 당시 우리나라의 인권상황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힘겹게 쟁취한 직선제 대통령선거의 패배로 인해 민주진영은 절망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6월항쟁으로 민주화를 쟁취했다고 했지만, 조성만 열사, 최덕수 열사, 박래전 열사를 비롯해서 많은 학생들이 여전히 스스로 목숨을 끊어 불의에 항거해야 하는 절망의 시절이었습니다.

생활고를 비관하며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는 농민들, 공권력으로부터 또는 공권력에 기댄 회사 측으로부터 모멸적인, 강압적인 인권유린을 당하는 공장노동자의 처참한 상황 또한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 2년간 제가 맡은 인권관련 일들을 숨 가쁘게 처리해가다 이런 현재 상황을 모두 모아 ‘87-88 인권백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권백서를 받아든 김대중 총재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정당사상 인권백서가 만들어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야. 정말 수고했어.”

그리고 30분은 유심히 그 책을 들여다보시더니 “우리사회에 이렇게 많은 서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구먼, 참 할 일이 많다” 며 저의 손을 꼭 잡아주셨습니다. 그 책은 며칠 후 김대중 총재께서 당시의 인권상황을 설명하면서 “잘 살펴보시라” 며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의 회동 시 노 대통령에게 전달했습니다.

세상엔 경험이라는 것을 통해 어떤 가치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것만큼 확신이 강한 것이 없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본인 스스로 인권이 박탈되었을 때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존중받지 못한다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경험해 봤기에 누구보다 인권에 대한 가치를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1973년 도쿄 피랍사건을 비롯해 5차례의 죽을 고비와 6년 여의 감옥생활, 수십 여의 가택연금, 3년의 망명생활 등 그의 인생은 인권을 찾아가는 역정이었습니다. 노벨평화상은 그 인권을 찾아가는 역정의 작은 결실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김대중 선생은 정당에서 발행된 첫번째 인권백서가 누구보다 반가웠던 것입니다. 사실 실무를 했던 저 조차도 그 의미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 두 손을 꼭 잡고 말씀해주시던 "수고했다"는 한마디는 당시 저에겐 그냥 지나가는 말이 아닌 몸으로 전해오는 말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진정한 인권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인권의 역행을 가장 가슴 아파했던 분일 것입니다.

2009년 1월 용산에서 우리는 20년 전 인권백서에 있었던 상황을 그대로 목도하고 말았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 당시 일기를 통해 “경찰의 난폭진압...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나 눈물겹다”고 용산참사를 진단하셨습니다.

그 일은 지금의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일평생은, 살아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온 몸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 : 이글은 우원식 17대 국회의원이 민중의 소리(www.vop.co.kr)에 8.22 쓴 김대중대통령 서거 추도사의 내용을 가져왔음을 밝힙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함께 생각하는데 좋은 글이이서 여기에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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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hisastro.textcube.com BlogIcon 그별 2009.08.27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저는 아쉬운 것이 너무 많습니다.
    지금의 정부가 하듯이 반대로 그렇게는 할 수 없었는지... 너무 큰 바램이었을까요?

김대중 전대통령의 빈소에서 만난 시민들의 기억들, 다짐들입니다. 이름만 써주신 분들도 계시고 장문의 글을 써주신 분들도 계십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말은 책속에나 있는 말인줄 알았습니다. 이 다짐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잃지 않고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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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순 의원이 미디어악법이 통과된 바로 다음날인 7.23일 '의원직을 사퇴하며 감사드립니다.'라는 제목을 포함해 단 몇줄의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리고 국회의원직 사퇴를 실행에 옮겼다. 미디어법 통과에 대해 이미 공언해왔던 스스로의 말에 책임을 진 것이다. 최문순 의원의 홈페이지는 트래픽이 걸려 다운이 되었고 격려의 전화와 글이 뒤를 따랐다.


의원직을 사퇴하며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늘 국민들께서 저에게 부여해 주신 헌법기관으로서의 권능을 국민 여러분들께 반납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지켜야할 것들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내려놓고자 합니다.

언론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지켜내지 못해 죄송합니다.
헌법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동안 격려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09. 7. 23 최문순 올림

걱정하는 내가 오히려 겸연쩍었을 정도로 의원실의 보좌진들은 지금의 고실업의 시대에 직장을 짤릴 위기를 마냥 즐기고(?) 있었다.

최문순 의원은 어쩌면 국회의원이란 신분을 의도적으로 알리지 않으면 그냥 이웃집 아저씨같은 순박한 외모를 가지신 분이다. 물론 외모만큼의 다른 이들을 대하는 겸손함도 갖춘 분이다. MBC 사장 출신이라는 것도 참으로 믿기지 않을 만큼 어깨에 힘을 세우지도 자신을 앞세우지도 않는다.

다만 현장에서 가장 낮은 곳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묵묵하게 뛰어다니며, 그들의 목소리와 외침에 귀기울일줄 하는 분이었고, 열심히라는 단어로는 표현하기 부족할만큼 기록을 즐기던 분이다. 그래서 최문순 의원은 국회에 똑딱이로 불리는 디카와 블로그 열풍을 일으킨 장본이기도 하다.  


그의 의원직 사퇴의 변은 짧지만 강렬하다. 정말 지키고 싶었던 것에 대해 그의 말은 절절했고, 그는 국민들에게 너무나도 죄송스러워했다.
언론을 지키고 싶었던 최문순, 표현의 자유를 지켜내고 싶었던 최문순,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키고 싶었던 최문순...

그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는 비단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민의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18대 국회에서 참담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사퇴를 번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그의 사퇴를 번복시킬 힘은 어쩌면 국민들에게만 있는 것이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헌법과 민주주의만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엄혹한 국회에서 그나마 그러한 가치를 지키고자했던 소중한 한 국회의원을 잃는 것인지도 모른다. 되돌릴
좋은 방법이 정말 없는 것일까?

나는 똑딱이를 들이대고, 히죽 웃으면서 다닐 그가 여전히 보고싶고, 국회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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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2005.12.16일 서울시청 앞에서 촛불집회를 했었다. 당시 사학법 개정으로 엄동설한에 전국을 돌며 장외투쟁을 하고 있었다. 당시 이명박도 서울시장 재직중에 촛불을 들었다. 그들이 든 촛불은 시민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사학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촛불이었을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민주주의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4년이 흐른 지금 민주당은 2009.6.10 시민들의 광장을 사수하기 위해 궂은 비가 내리는 서울광장에 텐트를 치고 1박 2일간 노숙투쟁을 벌였다.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은 다시 촛불을 들었다. 기득권이 아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2005년의 광장은 열려있었고, 2009년의 광장은 명박차벽으로 닫혀 있었다. 2005년의 장외투쟁과 2009년의 장외투쟁이 다른 것은 4년이라는 세월만이 아니었다. 전경이 시민과 광장을 분리했고, 전경이 시민을 향해 방패를 날리기 시작했다. 2005년 민주주의 혜택을 톡톡히 누렸던 이들이 이제는 방패와 곤봉이 되어 우리에게 날라왔다.



              그렇게 2005년과 2009년의 민주주의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 사이에 두번의 투표가 있었을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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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xeonia.com BlogIcon Xeonia 2009.06.12 2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는 정말로 들고 일어나야 되지 않아야 할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다 정말 민주주의가 사라져 버릴거 같습니다.
    기득권을 위한 민주주의만 남고...